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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균선생의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한국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한국 민주주의
[발표문]세계화 시대 한국 l민주주의: 검토와 모색
김세균 서울대 교수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과정은 크게 보아 한편으로는 민주화과정의 도입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에 의해 특징져진다. 그런데 이 두 과정의 중첩은 민주개혁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진척된 민주주의의 형해화와 공동화를 촉진시켰고, 거기서 더 나아가 비록 자유민주주의의 완전한 부정은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수립을 필연화시키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왜 한국에서 민주화과정의 진척이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수립이라는 자기부정적인 사태를 몰고 오고 있는가를 구명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 답해 보려고 한다.
1. 87년 6월의 민주항쟁 이후의 민주화의 기본성격
1987년 6월의 민주 항쟁과 이것이 가져온 6.29선언은 1948년의 대한민국 수립 이후 밑으로부터의 크고 작은 지속적인 도전과 그것이 야기한 몇 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유지되어온 군부독재체제가 이제는 확실하게 역사적으로 퇴장하지 않으면 안 됨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 점에서 1987년 6월의 민주 항쟁은 한국 민주화 과정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화과정의 도입과 관련해서 아래의 몇 가지 점들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첫째, 1960년의 4월 혁명을 통해 일시적으로 민주주의체제가 수립되었고, 1979년 10월의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시해사건 이후 민주주의체제가 수립될 가능성이 열리기도 했지만, 1987년 6월의 민주항쟁 이전에는 민주주의체제의 안정적인 수립이 이뤄질 수 없었다. 이와는 달리 6월 민주항행이 민주화과정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군부독재체제에 대한 범국민적 거부감이 조성된 가운데 그 이전의 한국자본주의의 눈부신 성장을 힘입어 대거 형성된 신중간층이 민주화운동에 가담함으로써 군부독재의 유지냐 퇴장이냐를 둘러싸고 형성된 당시의 사회적 역관계가 결정적으로 변모한 사실이 중요하다. 거시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던 한국이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위로부터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강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민중배제적 개발독재체제의 수립을 불가피하게 요구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는 개발독재체제의 수립에만 힘입은 것이 아니었다, 이승만정권이 단행한 토지개혁 및 한국을 확고한 반공 전초기지롤 만들고자 한 미국이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고, 한국의 산업화 추진을 지원한 것 등도 중요한 요인이 속한다.
이와 관련, 개발독재체제의 수립이 민중 희생의 급속한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추진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제공했다면, 산업화를 추진함에서 보인 개발독재체제의 성공이 개발독재체제의 퇴장을 강제하는 새로운 사회적 힘을 배태-성장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거시적으로는 한국전쟁을 경험한 이후 민주주의의 도입이 반북반공체제를 훼손하거나 적화통일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북한에 대한 공포를 지배층이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했고, 많은 일반대중이 이런 공포감을 실제로 공유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민주화과정의 도입이 그간의 산업화를 통해 한국자본주의가 중화학공업을 통해 강력한 물적 토대를 가지게 되고,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그것을 압도하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만든 구조적 조건으로 기능했다.
둘째, 한국에서 민주화과정의 도입은 군부독재체제를 주도하거나 지탱시킨 세력들의 즉각적인 퇴진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86년의 ‘4.30 청와대 합의’와, 이를 뒤이은 87년의 ‘6.29협약’이라는 군부독재세력과의 타협에 의거해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민주화과정의 도입이 기본적으로 ‘타협적 민주화’에 의해 특징져짐을 가리킨다. 왜 한국의 민주화과정은 독부독재의 즉각적인 타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타협적 민주화의 형태로 관철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이른바 ‘선거혁명’을 주창한 (부르주아세력의 한 분파인) 자유주의세력의 확고한 대국민적 헤게모니 하에서 진척된 데에, 나아가 한국정치에 압도적 영향을 미친 미국이 급진민주혁명의 전개 등을 예방하기 위해 타협적 민주화를 지지한 것 등에 기인한다.
군부독재 하에서 민주화운동의 주력부대를 형성한 것은 청년학생세력으로 대표되는 민중지향적인 급진세력이었는데, 이들 급진세력은 5.18 민중항쟁 이후 자신의 힘을 크게 신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유주의세력의 헤게모니를 대체할 만한 세력으로까지는 성장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자유주의세력의 후미를 형성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이광일, “6월 항쟁, ‘더 많은 민주주의’의 좌절”, [한국민주주의운동의 의미, 평가, 전망](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학술대토론회 자료집],59-77쪽 참조.
그리고 자유주의세력이 한국 민주화운동의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수립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급진적 정치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이 인신적으로 섬멸당하고, 강고한 반북반공체제 하에서 이들의 성장-발전이 거의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점, 반북반공체제가 위력을 발휘하고 군부독재체제가 노동자들을 병영국가적으로 통제하는 조건 속에서 노동자대중,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이 6월 민주항쟁 이전까지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세력으로 성장-발전할 수 없었던 점 등에 기인한다. 이런 점은 예를 들어 노동운동세력이 이미 군부독재체제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브라질의 사례와 대조된다.
셋째, 민주화 과정이 타협적 민주화를 통해 도입되고, 자유주의세력의 대국민적 헤게모니 하에서 진척된 것은 87년 6월의 민주항쟁 이후 도입된 한국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형태라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도록 만들고, 자유민주주의의 진전 역시 극도로 더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민주화과정의 도입은, 수구세력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반독재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유주의세력 그간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세력은 자신을 수구(보수)세력과 구분해 ‘(민주)개혁세력’ 내지 ‘진보세력’으로, 그리고 대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냉전수구세력’과 구분해 ‘평화애호세력’ 등으로 불러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세력과 급진세력이 모두 진보세력으로 통칭되고 있는 사실을 존중한다면, 자유주의세력은 ‘개혁적 (내지 온건) 진보세력’으로, 급진세력은 ‘급진적 (내지 변혁적) 진보세력’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세력과 급진세력을 함께 진보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양 세력 간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와, 자유주의세력과 오늘날의 수구세력 간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동일성을 놓치게 만든다. 때문에 오직 급진세력만을 진보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하겠다.을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상승시켰으며, 이 과정은 동시에 수구세력의 저항 등에 부딪쳐 매우 더디게 진척되었지만 크게 보아 군부독재 잔재의 청산과 민주개혁의 진전을 가져왔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2년 이후나, 아니면 늦게 잡더라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안착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수구세력이 다시 집권한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더 이상의 민주개혁을 막고 이미 성취한 민주개혁을 후퇴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 이들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과잉’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앞으로 국가비상사태의 선포 등으로 일시적으로는 민주주의체제의 실질적인 비민주주의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겠지만, ‘국가형태’ 수준에서 국가체제를 과거와 같은 비민주주의체제로 되돌릴 수는 없음을, 그리고 일부 극우세력이 그간 친북 좌파정권의 타도를 위해 군부 쿠데타와 같은 내란을 선동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예상 가능한 미래에 군부 쿠데타와 같은 국가정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고 설령 그런 시도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가리킨다. 이는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할 때 민주주의는 이미 공고화의 단계를 넘어섰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체제는 근본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간접민주주의, 위임민주주의의 형태로 실현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는 국가가 ‘사회의 곁/위에 선 특수한 공적 권력체’로 조직되지 않으면 안 되는, 또는 그와 같은 ‘국가형태의 자립화’를 요구하는 자본주의국가체제의 일종이다.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는 국민투표,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의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에 의해 보완될 수는 있지만 결코 국가권력의 대중권력 그 자체로의 전환이 가능케 만드는 직접민주주의 중심의 민주주주체제가, 참여민주주의나 심의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민주주의체제가 아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론자들이나 심의민주주의자들은 대체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체제를 자신들의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체제로 착각하고 있으며, 또 그럼으로써 대중에게 자본주의국가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를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견해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파악이다, 그렇기는커녕 자유민주주의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형태인 한 그것이 가장 완성된 형태로 출현한다고 할지라도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근본적으로 간접민주주의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민주주의체제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한국의 민주화과정과 관련하여 수구세력의 저항 등은 민주개혁의 진전을 더디게 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현재 성립된 민주주의체제를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많은 결손을 지닌 민주주의체제’ 내지 ‘제한적 민주주의체제’로 고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체제는 송두율교수사건(2004), 강정구교수사건(2006)을 필두로 이시우사건(2007), 미르북 인터넷서점 사건(2007) 등이 보여주다시피 여전히 학문,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핵심적인 법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으며, 노무현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개혁입법 4대과제에 포함시키고 탄핵사태 이후에 있은 총선을 통해 이른바 ‘개혁파’가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다수파를 차지한 가운데에서도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지 못한 사실에 비취 남한사회 내부에 세력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그 철폐는 요원한 것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신고제의 허울을 쓴 실질적인 허가제인 집시법의 존재, 교사-공무원 등의 정치적 활동의 포괄적 제한, 긴급조정제도의 유지와 필수공익사업부분의 과도한 지정, 교수노조 설립 불인정과 복수노조 금지 등이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도 누려야 할 노동권의 실현을 심대하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재승, “민주화이후 인권문제의 전개 양상”, [한국민주주의의 현실과 도전](6월 민주항쟁 20년 학술대토론회 자료집), 127~148쪽 참조. 이 글은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자유민주주의의 지평을 넘어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문제 등을 아울러 다루고 있다.
2.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개편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과정은 민주화과정의 도입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에 의해서도 특징져 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노태우정권 하에서 한국경제체제를 그간의 성장을 통해 그 물질력을 증대시킨 민간경제가 주도하는 체제로 이행시키기 위한 조치들이 행해지기 시작한 데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들이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의 전사(前史)를 이룬다면, 그 개편의 본격적인 서막은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가 한국의 살 길이라고 제창하는 가운데 WTO체제 수립을 위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참여하고, OECD 가입을 적극 추진함에 따라 열렸다. 나아가 1997년 하반기에 한국이 역사상 유례없는 외환-금융위기에 빠져든 조건 속에서 2008년 초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IMF의 처방을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 국민 자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할 길‘이라고 제창한 이후 한국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으며, 노무현 정부가 ’개방적 통상국가론‘을 제창하는 가운데 ’세계화에의 적극적인 동참‘을 추진함에 따라 한국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더 한층 진척되기에 이른다. 한미FTA의 체결은 이런 과정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데, 한미FTA가 발효한다면 한국경제의 미국경제로의 편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사회체제 전반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체제로 확고하게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그간의 신자유주의 개편은 민주화과정의 도입으로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부상한 자유주의세력이 주도하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수구세력이 뒷받침하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이와 관련,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이 내부적으로는 민주개혁의 문제와 대외적으로 대미관계와 대북문제에서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에서도 신자유주의의 추진이라는 점에서는 공고한 동맹을 맺어왔고, 그런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세력과 민중운동세력에 공동 대처해 왔음이 확인된다. 여기서, 한국의 자유주의세력이 왜 반독재민주화운동 시기에 느슨하나마 유지해 왔던 급진세력과 민중운동세력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이들의 요구에 반하는 신자유주의 개편을 주도하게 되었는가가 질문으로 제기된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이들 역시 수구세력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지지하는 부르주아세력이라는 점, 때문에 그들이 추진하는 민주화 역시 자본권력의 대국민적 헤게모니의 강화에 기여하는 민주화, 즉 ‘자본주의적 민주화’ 이상의 것이 되기 어려운 것이라는 데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 한국의 자유주의세력은 민주화과정의 도입 이후, 뉴딜정책을 추구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같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시장경제체제의 병폐를 제거하기 위한 준(準)사민주의적인 대대적인 체제개혁을 지지하는 ‘혁신자유주의(reform liberalism)’의 추진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했는가? 한국 자유주의세력의 양대 세력을 형성한 김영삼 세력이 직선제 개헌과 의회정치의 회복을 주장한 것 외에는 수구세력과 별반 차이를 지니지 않은 보수적 자유주의세력이었다는 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김대중은 한때 ‘대중경제론’을 제창했고,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민중세력과도 이런저런 유대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지 않는가? 나아가 노무현 세력 역시 이른바 지역의 ‘변방세력’에 기반을 둠으로써 기득권세력에 대해 남다른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세력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해 오긴 왔지만 그 발전이 한국에서 생산된 잉여가치의 상당한 부분을 외국의 초국적 자본에게 바쳐야 하는 ‘종속적 발전’을 통해 이뤄짐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사민주의적 개혁은 물론 혁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가능케 하는 물질적 기반을 결여하고 있었던 데에,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1987년의 외환-금융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가 미증유의 축적위기에 빠져듦으로써 그런 개혁의 추진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 한국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을 중심으로 발전해 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발전 이외에는 한국자본주의가 축적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는 점 등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이 늦어도 MNF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그의 대중경제론적 관점을 최종 포기했음을, 그리고 노무현은 지방의 변방세력에 기반을 둔 대통령답게 지역균형 발전 등에는 남다른 관심을 표방했지만 처음부터 세계화의 동참과 신자유주의적 발전의 확고한 지지자였음이 상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전후 유럽에서의 사민주의적 개혁이 전전(戰前)에 있었던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증대와 반체제적 사회주의운동의 급성장 등을 배경으로 이뤄진 사실에 비춰본다면, 한국의 급진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이 체제를 위협할 만한 세력으로까지 성장하지 못했던 것 역시 그런 개혁을 불가능케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과정의 도입이후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지만, 그 운동이 기본적으로 노동기본권의 쟁취와 민주노조의 건설과 같은 최소수준의 권리 쟁취 운동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 나아가 이후 민주노동당이 건설되고 의회에 진출하긴 했지만 그것이 체제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성장하지는 못했다.
다른 한편, 한국의 보수세력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과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지속시키고 있고, 사회안전망의 구축 등을 위한 복지정책을 추진한 것 등을 들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기업투명성의 제고를 위한 기업규제와 재벌규제 등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정책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정책은 경제에 대한 최소 개입을 지향하지만 친시장적, 기업후원적 개입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유의 개입을 적극화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정권이나 아니냐를 판별하는 기준은 국가의 경제개입 유무가 아니라 그 개입이 대중의 권리 신장 등을 위해 자본에게 양보를 강제하는 시장규제적-친노동적 개입인가, 아니면 기업의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한 친시장적, 기업후원적 개입인가이다. 나아가 위기를 예방하거나 대처하기 위한 케인즈주의적인 거시경제적 개입 역시 신자유주의정권 하에서도 최소 수준에서는 불가피하다. 실제로 그런 개입조차 행하지 않는 것은 국가 임무의 방기와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나아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이란 대체로 예상되는 대중의 반발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주의적 복지정책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 적극적 복지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도 사실은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이른바 ‘생산적’ 복지정책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친북적이라는 비판은 전적으로 데마고그적 비방에 불과하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양 정부 역시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 확보와 같은 대북우위 확보 정책을 버린 적이 없으며, 대북화해정책 역시 그런 정책의 기반 위에서 추진하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대북화해정책 역시 개성공단의 추진에서 드러나다시피 북한을 남한경제와 세계자본주의체제로 통합시키고, 이에 기초하여 북한경제를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켜 북한을 남한에 통합하려는 자유주의적 북한 흡수통일정책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정부의 대북화해정책은 친북적 이기는커녕 철저히 친자본적인 것이다.
자유주의세력은 정권을 장악한 후 자본이 직면한 축적위기를 타개하고 세계 진출을 시도하는 기업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기 위해 친시장적, 기업후원적 국가개입을 적극화하고 최대화했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세력 집권 하의 한국의 국가체제는 이전의 ‘발전국가’에서 확고하게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세계 전체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 든 이후 세계 각국의 자본주의국가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 이런 유형의 국가를 밥 제솝은 케인주의적 복지국가와 구분해 ‘슘페터적 근로국가’로 부르고 있다, B. Jessop, "Towards the Schumpeterian Workfare State," 1993: 김호기 역외 편역, 『포스트 포드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미래』, 한울, 1995; B. Jessop, "The Transition to Post-Fordism and the Schumpeterian Workfare State," in: R, Burrows and B. Larder (eds.), Towards A Post-Fordist Welfare State?, London: Routledge, 1994 참조. 로 변모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시장에서의 자국자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내국의 자원을 총동원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국민적 경쟁국가’(der nationale Wettbewerbsstaat: J. Hirsch의 용어)와, 자국자본 중심의 경제발전을 포기하고 자본의 국적에 상관없이 자국으로 자본을 최대한 유치하여 전세계적으로 생산된 잉여가치 중 자국의 몫을 최대화하려는 ‘탈국민적 자본유치국가’로 분화하는 양상이 발생하고 있다. 제국주의적 국가군이 전자 유형의 국가로 발전하고 있는 국가들이라면, 외채위기 이후 자국자본 중심의 발전을 포기한 멕시코 등의 국가들이 전형적인 후자 유형의 국가에 속한다. 그런데 개발독제체제 하에서 한국은 자국자본 중심의 발전을 추구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IMF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개방이 적극 추진됨에 따라 한국경제에 대한 미국자본 중심의 초국적 독점자본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한미FTA가 발효되면 이 과정은 더욱 가속적으로 진척될 것이다. 이와 관련, 현재의 한국은 기본적으로는 ‘국민적 경쟁국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탈국민적 자본유치국가’로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점,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해외의 초국적자본 지배하에 확고하게 놓이게 된다면 싫든 좋든 ‘탈국민적 자본유치 국가’로 변모할 수밖에 없음이 지적될 수 있다. 탈국민적 자본유치 국가는, 토착 지주계급을 하위동맹자로 둔 구식민지와는 달리, 내국 대자본과 융합하거나 내국 대자본을 하위 동맹자로 둔 외국계 초국적 자본의 지배가 관철되는 새로운 경제적 식민지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국가체제이다. 국가가 탈국민적 자본유치 국가로 변모하게 되면 그 국가는 형식적으로는 독립국가의 형태를 지닐지라도 실질적으로 무엇보다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국 국민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경제적 식민지체제의 총독부 기구 이상이 되기 어렵다.
3.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출현과 한국민주주의의 위기
개방과 자유화, 탈규제화, 유연화, 사적 책임, 경쟁과 효율성 옹호 등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시장경제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경제적 관계에 종속시키려고 하며, 또 이를 통해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대중을 자본운동의 요구에 확고하게 종속시키려고 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인민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자유’를 절대시하므로 근본적으로 민중적대적이며, 민중배제적, 민중억압적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시장경제적 관계로 재편되거나 시장경제적 관계에 종속되면 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은 파괴되고, 사회는 ‘사회의 부재’와 다름없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적 개인들의 단순 총합’과 같은 것으로 변모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인간들 간의 관계를 돈을 벌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관계를 맺기를 강제하며 - 그러므로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관계란 ’자연상태‘이기는커녕 사회적 관계의 총제가 시장적 관계화 되었거나 시장적 관계에 종속된 상태가 인간들에게 강제하는 인간들 간의 관계이다 -,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소수에게는 더많은 부의 획득과 새로운무한한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경쟁에서 뒤쳐지는 다수 대중의 삶을 파괴하고, 그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림으로써 ‘사회의 황폐화’를 촉진한다. 신자유주의는 대중에게 개별화와 파편화 및 위계화를 강제하며, 이런 강제는 노동자대중의 계급으로의 단결과 조직적 저항 및 자본지배에 대항하는 민중의 새로운 대안적인 역사적 블록의 형성 등을 어렵게 만들며, 이는 다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 및 대중에 대한 자본지배를 강화시킨다. 그러나 대중의 파편화, 위계화 역시 크게 보면 중간층의 몰락과 다수대중의 빈곤화를, 또 이를 통한 다수 국민의 프롤레타리아화가 이뤄지는 선상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중간층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노동유연화의 진척으로 불안정노동의 전면화와 비정규직의 양산을 가져왔으며, 이 과정은 다시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다수대중의 빈민화 등을 촉진시켰다. 나아가 공공부문의 사유화 등은 소득재분배 과정을 다수의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불리하게 만들고 대중의 삶을 더욱 옥죄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공익보다 사적 소유에 대한 권리가 강조되면서 대학에 대한 사학재단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1990년의 사학법 개악 등이 보여주었다시피 - 2005년의 사학법 개정은 이 권리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그 제한은 1990년의 사학법 개악 이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여러 부분에서 사회민주화의 수준조차 후퇴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를 동반했으며, 또 이로 인해 사회 안정망의 구축이나 생산적 복지체제의 구축 등이 (예를 들어 노숙자를 양산시키는 체제 하에서 노숙자 보호제도의 도입이 노숙자의 정상적 시민으로의 복귀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노숙자가 양산된 사회적 상황의 징표에 불과하다시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교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후퇴한 사회적 상황을 드러내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적인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가 대중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향상 등에 기여할 경우에만 그 민주주의는 대중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관철되는 조건 속에서도 대중에게는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초래한 민생경제의 파탄과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대중의 삶에 실질적 의미를 지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과정을, 자유민주주의의 진전을 대중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 만드는 과정을 동반했으며, 이 과정은 이후 많은 대중들에게 ‘박정희체제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수구세력이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유민주주의적인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이 대중에 실질적 의미를 지닌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동반하고 수구세력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강화시킨 이 과정을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의 형해화(形骸化)와 공동화(空洞化)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단지 ‘자유민주주의의 형해화-공동화’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적인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 자체를 방해하거나 더디게 만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절차적-민주주의의 후퇴조차 강제하는 계기를 포함한다. 이와 관련, 먼저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및 윤리적 자유주의의 조화를 추구한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달리, ‘시장지상주의’라 부를 수 있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절대화’를 추구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에는 비민주적 권위주의나 파시즘과도 결합할 수 있는 체제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민주개혁을 추진한 자유주의세력이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주도했지만) 군부독재체제였던 칠레의 피노체크 정권 역시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추진했으며, 쇼크요법을 통해 국가사회주의체제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의 급속한 전환을 추구한 옐친정권은 비민주적 권위주의정권으로 분류해야 마땅한 정권이었다.
신자유주의는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이 자유주의세력에 의해 추진된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민중적대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적인 절차적-형식적인 권리에 속하는 것일지라도 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거나, 대중의 사회적-정치적 영향력 강화에 직접 기여하는 권리의 신장에는 매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체제가 자유주의자들에게 그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위치에 오른 민주화과정의 도입 이후에도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조차 옥죄는 악법이었다는 한다면, 자유주의자들이 국가보안법의 철폐에 그처럼 소극적이거나, 수구세력의 반발에 부딪치자 그 철폐를 위한 운동을 그처럼 빨리 포기할 수 있었겠는가를 질문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했다면 그들은 사생결단을 내더라도 국가보안법을 기필코 철폐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체제는 비록 군부독재 하에서는 그들의 정치적 행동을 옥죄는 악법이었지만, 민주화과정의 도입 이후에는 그들의 정치적 자유에 아무런 본질적 제약도 가하지 않는 법체제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민주화과정의 도입 이후에도 특히 노동권과 관련되는 권리의 신장은 지극히 험난한 과정을 거쳐 이뤄졌고, 지금도 노동권의 구현을 제약하는 법체제들이 완강하게 존속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의 지속은 자유주의세력이 대중의 사회적-정치적 영향력 강화에 직접 기여하는 권리의 신장에는 매우 소극적인 데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사정들과 관련하여, 우리는 그간 한국의 민주개혁이 지극히 더디게 진행된 데에는, 그리고 그간의 민주개혁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제한적 민주주의로 머물고 있는 데에는 수구세력이 완강하게 민주개혁에 저항한 것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세력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적극 추구한 데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는 자유민주주의적인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 자체를 방해하거나 더디게 만드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적인 절차적-민주주의의 후퇴조차 강제하는 계기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내장된 파시즘적 경향’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또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지배가 지속되는 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근간이 유지될지라도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가장 반동적 형태 내지 가장 타락한 형태로 규정지울 수 있는, 경찰을 통한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공권력의 투입을 통한 저항의 분쇄를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민중배제적인 성격을 지니며,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촉진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지배체제는 대중을 화폐권력의 전횡에 종속시키고 대중의 계급으로의 단결 등을 어렵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든 적든 신자유주의체제에 대한 대중의 항상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고, 불만의 조직적 분출만이 아니라 ‘민중반란’과 같은 자연발생적인 반란의 폭발을 가져올 가능성도 높인다. 그런데 대중의 불만 표출과 저항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책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양보를 강제하고 자본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규제를 강화하는 양보적 통합책의 강구가 될 수 없고, 대중에 대한 위로부터의 통제를 강화하고 억압적 탄압책을 강구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체제는 처음부터 이미 성립된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실질적으로 후퇴시키고, 자본에 대해서는 ‘약한 국가’이지만 대중에 대해서는 ‘강한 국가’를 출현시킬 가능성을 지닌 체제의 성격을 지니는데, 신자유주의체제에 내재하는 이런 경향성을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내장된 파시즘적 경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내장된 파시즘적 경향이 표출될 경우,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가 출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모순이 심화되고,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이 격화되면 될 수록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출현은 필연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점을 그간의 한국의 정치변동과정과 관련하여 확인해 보자.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이 된 자유주의세력은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적인 민주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민주개혁을 더디게 만들거나 후퇴시키는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주도해 왔다. 그런데 서로 대치되는 계기를 지닌 이런 모순적 개혁의 추진은 김영삼 정부 하에서는 물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하에서도 정권 출범의 초기에는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민주개혁이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일정하게 상쇄하는 이른바 ‘개혁국면’이 조성되었지만, 민주개혁의 추진이 정체하고 신자유주의적 개편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증대한 정권의 후반기에 이르면 ‘공안정국 내지 탄압국면’이 조성되는 양상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었다. 이러한 개혁국면의 탄압국면으로의 전환은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체제’의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수반했는데, 이 전환은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출현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하에서 이뤄진 민주개혁이 한국에서 이뤄질 수 있는 민주개혁의 최대치를 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비록 자유민주주의적 개혁의 과제가 소진된 것은 아니지만 설령 자유주의세력이 앞으로도 계속 집권한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한 이들로부터 민주개혁의 더 이상의 추진은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민주개혁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다음 대선에서 ’민주주의의 과잉‘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수구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제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적인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진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나아가 한미FTA의 체결 등으로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의 모순은 한층 더 심화되고 있고,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이런 과정의 전개는 신자유주의에 내장된 파시즘경향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를 한국의 국가체제의 정상적 내지 일상적 형태로 만들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미FTA 체결을 강행하면서 노무현 정권 하의 국가체제도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로 이미 확고하게 변모했다. 신자유주의 경찰국가, 이 국가체제는 그간의 민주개혁의 추진에 힘입어,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상대적 미미함에 힘입어 간헐적으로 수립되었지만 신자유주의가 지닌 민중적대성에 비춰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지배체제에 가장 적합한 정치적 형태에 속한다. 자유주의세력에게 더 이상의 민주개혁을 기대하기 어렵고, 민주주의의 과잉을 주창하는 수구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조건 속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증대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는 이미 한국 국가체제의 현재적 형태가 되었고, 또한 한국국가체제의 미래적 형태에 속하기도 한다. (물론 대중의 저항이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성립을 불가능케 할 정도로 증대하거나 이에 힘입어 급진세력이 집권하게 된다면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립된 민주주의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돌파하는 민주주의체제이며, 더 이상 신자유주의체제의 정상적 재생산에 기여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민중통합적인 혁신자유주의체제 등으로 출현하지 못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가장 반동적 형태 내지 가장 타락한 형태로 규정할만한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진정한 위기를 대변한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신자유주의적 지배를 관철시키는 정치적 형식이 됨으로써 대중통합력을 지닌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상승할 능력을 상실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형태로 출현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대중의 생존권 요구와 민주적 욕구를 억압하는 대중에 대한 준(準)파시즘적 통제체제로 기능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다시 신자유주의지배체제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강화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중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욕구를 증대시킬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관철이 국가체제의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로의 전환을 요구했지만, 그 전환은 다시 신자유주의체제에 대한 저항을 강화하고 그 저항을 한층 더 급진적인 것으로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4. 결론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의 효과로 이뤄진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과 결합됨으로 말미암아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라는, 공개적으로 독재적인 비민주적 체제에 가장 근접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한국국가체제의 정상적-일상적 형태로 만드는 것으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런 비극적 결말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민주화과정을 자유주의세력이 주도한 데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한국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에 자유주의세력이 신자유주의를 한국사회 발전의 유일한 길로 받아들인 데에 기인한다.
한국의 국가체제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체제로 확고하게 변모됨에 따라 한국민주주의를 진전시킴에 있어 자유주의세력의 역할도 사실상 종결되었다. 자유주의세력은 설령 다가오는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민주개혁을 진전시킬 능력을 소지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한미FTA저지투쟁에 많은 대중 참여가 있었던 데에서 드러나다시피,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저항은 날로 증대하고 격화되고 있으며, 날로 조직화되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유화국면을 일정하게 조성한 후 곧장 공안정국을 조성한 노태우정권처럼 집권에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자유주의세력 역시 (개혁국면과는 구분되는) 유화국면을 일정하게 조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시 탄압국면을 전면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체제란 수구세력에 의해 더욱 잘 운용될 수 있는 체제이기도 하다.
한국 국가체제의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체제로의 확고한 전환은 한국이 이제 이전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이다. 그리고 한미FTA 체결이 가져오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체제로의 확고한 전환 및 그 가능성이 높아진 수구세력의 집권 등은 그 전환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체제하에서 신자유주의가 지닌 민중적대적 성격은 한층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더 많은 민주화 및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을 요구하는 대중의 요구 역시 증대할 것이며, 대중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를 한층 더 자유민주주의 한계를 넘어서는 민중민주주의적인 것으로 만들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확실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 새로운 시대는 신자유주의지배체제를 유지시키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시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으며, 다가오는 대선을 통한 새로운 정권의 출현은 이전 시대의 공식적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공식적 출현을 알리는 것이 될 것을 보인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수립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하지만 새로운 민주주의를 출현시킬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진보세력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저항을 발전시켜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로의 도래를 앞당기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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